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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과장의 자동차 세상

세바차 (세상을 바꾼 차) - 페라리125S 1947년

세바차 (세상을 바꾼 차) - 페라리125S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혼란기의 이탈리아에서는 파시스트에 찬성하거나

협력했던 사람들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이 와중에 알파로메오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비토리오 야노(1892~1965)의 제자이자 알파로메오 최고의

경주차 설계자로 꼽히는 조아키노 콜롬보는 정치적 오해를 사는 바람에 정직을

당했습니다. 게다가 알파로메오는 주방기구 같은 생필품과 저가형 차량을

생산하느라 스포츠카와 멀어져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콜롬보는 함께

일하자는 엔초 페라리(1898~1988)의 제안을 받게 되자 무척 기뻐했습니다.

 

페라리 역시 제2차 세계대전 전에 알파로메오의 레이싱 팀을 이끌던 실력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종전 후 그는 먹고살 궁리를 하는 대신, 자신만의 1500cc

레이싱카를 제작하고 싶어했습니다. 그 꿈을 이루고자 콜롬보에게 전반적인

설계 방향에 대한 조언을 구했고 콜롬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마세라티는 최상급 8기통 경주차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영국인들은 ERA 6기통 엔진을 가지고 있고, 알파로메오는

독자적인 8기통 엔진을 쓰고 있어요. 당신은 12기통 엔진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에 페라리는 대답했습니다.

"제 생각을 읽으셨군요. 오랫동안 12기통 엔진을 꿈꿔 왔습니다.

곧바로 일에 착수합시다."

 

이렇게 해서 페라리 125S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당시 주어진 조건을 생각한다면 아무도 이 첫 번째

페라리에 담긴 야망과 업적을 과소평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콜롬보는 변변한 작업실도 없이 밀라노에 있는 자택 침실에서

이 차를 설계했습니다. 콜롬보의 후계자였던 아우렐리오 람프레디와

부당하게 비교하면서 그의 업적을 깎아 내리려는 사람들도 종종

있지만, 콜롬보에게는 분명히 뛰어난 재능이 었었습니다.

후에 그는 영국의 드라이버 스털링 모스(Stirling Moss)를 스타로

등극시킨 당대 최고의 그랑프리 레이싱카 마세라티250F를

개발하기도 했다. 콜롬보가 사실상 초창기 페라리의 전체적인

모델 구성을 확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louice26666)